전체 글5 꿈 그 꿈 속에서 넌 어느 로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석양이 지는 거대하고도 깊은 계곡 아래에서 반쯤 그늘에 가려진 얼굴이었지만 당연히 알아볼 수 있었다. 너는 환한 표정으로 아름답다며 주황빛 계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내 곧 참여자 중 한명인 남자에게로 시선이 옮겨갔다. 나는 그걸 몰래 보고 있었다. 그리고 도망쳤다. 도망치고 도망쳐서 부산으로 향했다. 근데 갑자기 마음이 덜컥였다. 그래서 미친듯이 다시 뛰어 돌아갔다. 가는 길에 언젠가 너에게 말로 설명해준적이 있던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나에게 말을 걸었으나, 방해였다. 결국 너가 있던 그 계곡으로 돌아와 너에게로 향했다. 그리곤 그 꿈에서 깼다. 거기선 둘이 다시 만났을까. 2025. 8. 13. 안녕 안녕, 조제. 잘 지내? 우선, 도망치던 나를 붙잡고 제대로 마주보게 해줘서 고마워. 시간을 갖는 동안 너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 만나서 말했듯, 먼저 연락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전화하면 ‘보고 싶었어, 정말 많이’란 말이 먼저 튀어 나올까 그랬어. 미안해. 시간을 갖는 동안 너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또 정리한 것 같았어.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 너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고 또 울었지만, 나는 이미 우리가 헤어지는 것이 맞다 결정 지었기 때문이야. 그러니 이제 와서 이것저것을 따지고 싶지 않았어. 있잖아, 내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봐왔는데 너는 그 중에서 가장 특별하고 특이한 사람이었어. 내가 가장 노력해서 감추고자 하는 것을 너는 이미 알고 있었어. 연인 사이가 원래 그런걸까? 난.. 2025. 8. 13. 매일 새벽 2시에 아무도 없던 거리에서 2020년 7월 즈음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6월이 지나고, 나는 다니던 독서실에서 마감 시간까지 공부하다가 집에 가기로 했다. 근데 일주일에 3번은 혼자가 아니었다. 옆엔 아름다운 미, 사랑하는 애라는 별칭이 세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었다. 거리엔 아무도 없었고, 설령 누군가 있더래도 상관 없었다. 정말 영화가 현실이라면 우리가 주인공이었다. 우린 항상 어느 길목에서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고민했다. 오른쪽은 좀 더 빨리 헤어진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우린 대부분 왼쪽으로 갔다. 거의 그랬다. 그리고 함께 능소화를 봤다. 그러니 5년이 지난 지금도 능소화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꽃이며, 그리움이자 기다림이다. 2025. 7. 1. 섬세한 빵 조각 여느 때와 같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행사 촬영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행사장 실내의 통창으로 밖에 고릇한 고택이 하나 있다는 점이었다. 날씨도 살랑이는게 어찌나 좋던지.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너무나도 따분했다. 그냥 행사에 맞춰 셔터를 누를 뿐. 호텔 방 문 앞에서 사진을 찍다 잠시 립밤을 바르는데, 갑자기 누군가 들어와 나를 또렷이 쳐다봤다. 누굴까. 누구긴. 행사에 온 사람이겠지. 근데 이 행사는 미국으로 대학 및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을 위한 세미나다. 그러니 이 사람도 곧 이곳을 떠날 여행자겠구나. 서로 처음 보는 사이에 1.5초란 시간은 참 길다. 딱 그 정도 눈을 마주치곤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이름 모를 그 사람은 4시간이란 긴 시간 내내 자세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웃을 때도 차.. 2025. 6. 5. 수십억의 사람, 수백 개의 나라, 그리고 그 중 지금 여기 사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전혀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음식을 먹으며 자란 우리가 서로를 알게된 것부터 말이다. 그 날 혼자 처음 간 부산에서 심심하던 와중에 나중엔 러시아로 떠나볼까 가볍게 마음 먹고 인터넷에서 있는 수 많은 외국인 중 너와 알게 되었다. 러시아 사람은 아니지만, 비슷한 문화권이니 그러려니 했다. 사실 대화가 오래 가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화면 너머의 사람이지만, 정말 섬세하고, 또 어디서도 보지 못한 아름다운 용모를 갖춘 여자로 보였다. 자주 연락하고, 가끔은 실시간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기도 했으나 실제로 우리가 만날 일은 없기에, 서로 마음이 동하는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진 않았다. 나도 여기에 매몰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시간이 .. 2025. 5. 21. 이전 1 다음